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리우 자갈루 (문단 편집) == 지도자 경력 == 국가대표팀에서 펠레와 마찰을 빚었던 감독 주앙 사우다냐가 월드컵을 세 달 앞둔 시점에서 경질된 직후 자갈루가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였다. 이 때 자갈루는 열린 마인드를 가지고 [[카를루스 아우베르투 토히스|카를루스 아우베르투]]&[[제르송(1941)|제르송]]&[[펠레]]가 자발적인 회의로 직접 고안해낸 전술을 팀 메인 전술로 받아들이며 팀 선수들과의 활발한 소통을 꾀하였다. 이러한 자갈루의 개방적인 성격 덕에 전임 감독 사우다냐의 압박에 눌려 있던 브라질 팀은 창의성과 활기를 되찾을 수 있었다. 결국 1970년의 브라질은 가히 압도적인 활약을 펼치며 FIFA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성적(예선 포함 12경기 12승, 본선 6경기 19골 등)을 거둘 수 있었다. 참고로 자갈루가 감독을 맡았을 때 나이가 38세였는데, 이는 역대 월드컵 우승 감독 중 두 번째로 젊은 나이이다.[* 제일 젊은 감독은 [[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|1930년 월드컵]] [[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|우루과이]]의 감독이었던 31세 [[알베르토 수피시]]다.] [[1994 FIFA 월드컵 미국|1994년 미국 월드컵]][* 마지막 24개국 본선 진출 대회] 당시 [[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]] 기술고문으로 다시 한 번 월드컵을 들어올렸다. [[1997 코파 아메리카 볼리비아|1997년 코파 아메리카]]에서 브라질의 우승을 이끌어 남미 대륙 최초로 [[FIFA 월드컵]]과 [[코파 아메리카]] 우승을 동시에 거둔 감독이 되기도 했다.[* 이 기록은 남미 축구 역사상 [[리오넬 스칼로니]]와 자갈루 둘만이 가진 기록이며 전세계로 범위를 넓혀도 [[헬무트 쇤]], [[비센테 델보스케]]. 단 4명만 달성한 기록이다. 다른 감독들은 [[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-19|코로나]]로 인한 스칼로니의 1년을 제외하면 2년 만에 달성했지만 자갈루는 27년이 걸렸다.] [[1998 FIFA 월드컵 프랑스|1998년 프랑스 월드컵]][* 첫 32개국 본선 진출 대회] 때 다시 한번 감독을 맡아 브라질 대표팀을 [[1998 FIFA 월드컵 프랑스/결승|결승전]]으로 이끌었으나 [[에메 자케]]가 이끄는 프랑스에 0대 3으로 완패했다. 명실상부한 브라질 축구계의 제일 큰어르신이지만 소싯적에는 극성맞은 브라질 축구팬들에게 욕을 사발로 퍼먹었던 사람이기도 하다. 그리고 그 욕 수준이 보통이 아니었다. [[1974 FIFA 월드컵 서독|1974년 서독 월드컵]][* 16개국 본선 진출 대회]에서 브라질은 [[펠레]], [[제르송(1941)|제르송]], [[토스탕]]의 은퇴부터 시작해서 [[디펜딩 챔피언]]이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죽을 쑤는 경기력을 보였는데 [[세르비아 축구 국가대표팀|유고슬라비아]]와 [[스코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|스코틀랜드]]를 상대로 0 : 0 [[무재배|유기농 무를 캐는]] 굴욕을 당했고 아프리카 예선 우승팀인 [[자이르 축구 국가대표팀|자이르]]를 3 : 0으로 겨우 꺾어[* 참고로 당시 자이르 대표팀은 독재자 [[모부투 세세 세코]]가 유고슬라비아전을 앞두고 유고슬라비아 출신 비디치 감독을 경질하는 바람에 '''감독없는 팀'''이었다! 그런데 유고슬라비아가 [[자이르]]를 9-0으로 뭉개는 동안, 브라질은 우주의 기운을 받고도 고작(?) 3-0으로 이겼다.] 스코틀랜드를 골 득실 차에서 1골 차로 앞서 밀어내고 겨우 2라운드 8강 조별리그에 진출했다. 그러나 [[요한 크루이프]]가 버티던 [[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|네덜란드]]에 0 : 2로 처참하게 발리면서 8강 조 2위로 탈락해 결승 진출에 실패했는데[* 1974년과 1978년 월드컵은 8강도 조별리그 방식이었고 8강 각 조 1위만 결승행, 8강 각 조 2위는 탈락해서 3,4위전으로 갔다. 4강전이 없었다.], 이에 빡돈 브라질 축구팬들이 자갈루 감독의 자택을 습격해 기물을 파손하는 짓거리를 했다. 그 뿐 아니라 당시 브라질에는 [[독감]]이 유행했는데 브라질이 월드컵 우승에 실패했다는 죄목으로 이 사람의 이름을 따 '''자갈루 독감'''이라고 명명했다. 즉, 사람을 독감 [[바이러스]] 취급해버린 건데, 이 정도의 인격 모독을 당한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. 또한 [[1998 FIFA 월드컵 프랑스|1998년 프랑스 월드컵]] 때에는 브라질을 결승으로 이끌었음에도, 결승전에서 대패했다는 이유로 청문회에 끌려가기도 했다. 당시 [[호나우두]]의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였고 수비적인 경기 운영은 결국 프랑스전 대패의 요인으로 작용했다. 2002년 11월 20일 [[히딩크호/2002년/브라질전|대한민국과의 평가전]]에서 3-2로 승리하며 '''감독으로서 A매치 통산 100승'''의 위업을 달성했다. 호나우두가 2골을 넣고 [[호나우지뉴]]가 [[페널티 킥]]으로 결승골을 넣어 브라질 축구계의 위대한 원로에게 큰 선물을 안겼다. 참고로 이 경기는 대한민국의 축구영웅 [[홍명보]], [[황선홍]]의 은퇴경기로도 유명하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